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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용대에 올라 휘돌아가는 낙동강을 보다

작성일 : 2008-12-30 13:40

작성자 : 관리자

안동댐에서 병산서원, 하회마을까지 …
안동·임하호는 낙동강의 새로운 발원지

10여년 전 심한 가뭄으로 안동호 담수량이 줄면서 도산서원 아래 구 예안장터가 물 위로 모습을 나타낸 일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삶의 흔적이란 게 참으로 간단명료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마을 입구 시냇가 옆으로는 수몰 전에 베어낸 나무뿌리들이 도열해 있고 장터 바닥엔 물에 떠내려가지 않은 건축재료들만 고스란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기왓장, 구들장, 담장과 벽체를 구성했던 메주덩이만한 막돌들, 시멘트를 발라 만든 구들과 일부 조립식 담장들 ….
그러나 집 전체를 흙과 나무, 짚으로 지었던 초가집은 돌 구들장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마치 건축물 스스로 윤회의 수레바퀴를 훌훌 벗어던진 느낌이었습니다.
도산서원을 지난 낙동강은 낙동강 수계에서 제일 큰 담수호인 안동호를 거쳐 안동시로 내려옵니다. 안동에서 낙동강은 일월산에서 발원, 임하댐을 거쳐 내려오는 반변천을 만납니다.
안동시는 안동호와 임하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 바로 밑, 두 하천의 합수지점에 자리합니다. 안동 사람들은 댐이 안겨준 독특한 주민의식을 안고 삽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향을 수장(水葬)시키고 들어선 두개의 대형댐은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놓았고 이 지역 농촌공동체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안동 간고등어’의 본향이었던 임동면 책거리

아버지 고향인 임동면 일대도 임하댐 건설로 물에 잠겼습니다. 고조할아버지 산소에 올라서면 북쪽에는 안동호, 남쪽에는 임하호 물이 넘실거립니다.
임하호 수몰 당시 “우리집이 용궁이 됐다”며 쓴웃음을 짓던 아버지의 한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용궁’이란 표현은 안동시 인근 예천군 용궁면을 빗대어 쓴 말입니다.
임동면 신시가지 언덕 위에 올라보면 물에 잠기기 전 옛 지형이 눈에 선합니다.
옛날 장터 바닥으로는 영덕·진보 방면으로 가는 긴 교량(임동교)이 세워졌고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펑펑 쏟아졌던 노루매기 약수터는 이제 큰 계곡이 되었습니다. 6·25 때 온 동네 사람들이 피난을 갔다던 99계곡(구십구개골)은 임동면 신시가지 조성 때 매립되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유명한 ‘안동 간고등어’의 본향이었던 임동면 일대는 농업과 상업이 두루 발달해 일명 ‘책거리’(채찍거리)라고 불리던 활기 넘치는 동네였지만 지금은 20년에 걸쳐 서서히 몰락하는 낙후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농촌에 토지가 없으니 살 방도가 뭐 있겠는가.”
정든 고향을 물속에 묻고 임하호 옆에 새로 조성한 마을에 살고 있는 임동약방 주인의 말입니다. 그는 “농지가 다 물에 잠긴 후 이 마을엔 일 못하는 노인들만 남았다”며 “자식들이 도회지로 나가 벌어서 보내주는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가는 마을이 돼버렸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안동호와 임하호는 그러나 낙동강의 새로운 발원지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안동댐 방류량이 줄면 낙동강 하류의 오염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임하댐 수량의 상당 부분은 포항 등 낙동강 유역권 밖으로까지 공급됩니다.
근래 들어 대구 금호강의 수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도 임하호에서 영천 도수로를 통해 금호강 수계로 하루 30만톤의 신선한 강물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동시내를 지난 낙동강은 병산서원을 거쳐 물돌이동(하회마을)을 휘감아 돕니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건축학자들도 감탄해 마지않는 곳입니다. 사당과 강당, 양 옆의 재사, 누각 등으로 구성된 간단한 건축물이지만 병산서원은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과 강 건너 병풍처럼 두른 암벽을 모두 서원건축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병산서원의 백미는 서원 안에서 건축물의 프레임(창틀, 기둥과 사이, 처마와 처마 사이 등)을 통해 보는 주변 풍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강당인 입교당 마루나 누각인 만대루에 앉아보면 서원건축의 특징인 ‘원심적 경관구조’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불교 건축과 유교 건축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화려한 단청이나 복잡한 공포구조 등은 없어졌지만, 강당과 동서 양쪽의 서재, 전면의 누각, 누각 밑을 통해 강당으로 진입하는 공간구성 등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죠.
병산서원에 가서 보면 이런 질문은 평면도만 보고 건축을 평가하는 이론적인 의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병산서원으로 진입하기 전 만대루를 정면에서 보면 기다란 누각이 서원 내부는 물론 뒷산까지 가리고 있어 굉장히 폐쇄적이고 인위적인 공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만대루 안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180도 달라지죠. 바깥의 자연경관이 만대루 기둥들 사이로 들어오는 마술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사찰건축은 대부분 그 반대입니다. 사찰 건축은 대웅전 지붕 뒤로 아름다운 산 능선이 중첩되도록 지어집니다. 이런 걸 보고 바깥에서 안으로 향하는 ‘구심적 경관구조’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제 낙동강은 병산서원 앞 병풍산 절벽을 깎아내리며 오른쪽으로 휘돌아 하회마을로 흘러듭니다.
하회마을에 가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우리나라 탈춤 중 말(대사)이 가장 많은 하회탈춤 공연도 재미있고, 영남 북부지방 사대부 주택의 독특한 건축공간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요. 미로처럼 얽힌 동네 골목길에서 예쁜 담장 문양만 봐도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하회마을의 으뜸 경관은 강 건너 부용대 절벽에 오르는 겁니다. 부용대 절벽 위에 오르면 발 아래로 병산서원 앞 병풍산을 지나 하회마을을 180도 휘돌아가는 낙동강 본류의 모습이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제례와 접객의 공간, 사대부주택
사대부 계층의 주택은 이미 16세기에 절제된 조형미를 갖춘 뛰어난 건축물로 자리잡습니다. 하회마을의 양진당과 충효당, 경주 양동마을의 월성손씨종택(손동만가옥)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 가옥은 대개 ㅁ자를 이루고 그 가운데 마당을 두고 있지요. 출입구 한쪽 모서리에 사랑방과 사랑마루가 놓이는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 곳곳에는 씨족마을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나라 마을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400년 정도, 이 시기와 일치합니다. 씨족마을의 중심부에는 종가(宗家)가 들어서서 마을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종가 안에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건립하는 것도 이때부터의 일입니다.
영남의 주리론(主理論)자들은 임진왜란 이후의 사회 혼란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禮)’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건축에서도 예를 갖출 수 있는 계단과 댓돌을 만들고, 난간이나 문지방으로 격식을 차리려 했습니다.
영남학파 가옥의 특징은 네 귀가 반듯한 ‘ㅁ’자 집입니다. 전·후·좌·우 건물을 대칭으로 배치하고 재목도 가능하면 곧고 네모난 것으로 썼습니다. 심지어는 양쪽 문짝의 나뭇결 문양까지 대칭으로 맞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한 주기론(主氣論)자들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네모나고 폐쇄적인 공간은 사람의 기를 통하지 않게 하므로 오히려 통기(通氣)를 해야 한다는 거죠.
이들은 영남지방과는 달리 ‘튼 ㅁ’자형 집을 지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는 오히려 조금 비뚤어지는 게 좋고, 경우에 따라서는 집 한쪽을 비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얘기에서 너무 나아간 것 같지만 영남과 호남의 전통가옥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하회마을 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추신. 병산서원 앞모습을 건너편 절벽에서 보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길은 있습니다. 하회마을 하류 풍천면에서 어담리 쪽으로 가서 병산서원 건너편 선착장에서 오른쪽 절벽 능선을 타고 오르면 됩니다.
여름철 나무가 무성할 때는 이 길은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겨울에는 그래도 갈만한 편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보는 병산서원의 앞모습, 너무너무 평범해서 정말 화가 날 지경입니다.

안동 = 그림 이호신 화백·글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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